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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ctice

코피노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구본창 활동가

by journalistlee 2024. 5. 5.

코피노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구본창 활동가

| [인터뷰] Badfathers(배드 파더스) 운영자이자 WLK(We Love Kopino)를 설립한 구본창 활동가
 

인터뷰 현장에서 질문을 듣고 있는 구본창 활동가 [출처: 이채연 기자]

이채연 기자
 

여기 어린이들을 위해 총격전도 불사하는 한 사람이 있다. 우연히 본 쪽지 한 장을 시작으로 WLK(We Love Kopino) 단체를 만들고,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위기에 처한 코피노들을 돕는 사업을 하고 있는 구본창 활동가다. 코피노(Kopino)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로, 대개는 유학이나 여행으로 필리핀을 방문한 한국 남성들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이르는 말이다.

 
구본창 씨는 어린 시절 유복했으나,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남긴 빚을 떠안게 되었다. 365일 중 추석 하루 빼놓고, 하루에 14시간 온종일 일만 했다. 48세가 되던 해. 대형 입시학원 원장까지 지내며 빚을 모두 갚았고, 이내 회의감이 들어 은퇴 후 필리핀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가족들과 잠시 행복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코피노 맘을 만났다. 그 여성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과 사귀었고, 3년을 집에서 사위처럼 대접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이를 낳자 그 유학생은 한국에서 결혼 허락을 받아 오겠다며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건네주고 떠났다고 구본창 씨에게 울며불며 털어놓았다.
 

‘Geugeol Mitni(그걸 믿니), 18, Korea’

 
그 쪽지를 손에 든 구본창 씨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길로 'WLK(We Love Kopino'를 설립해 코피노 양육비를 받아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3년이 흘렀다.
 
13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변했다고 보십니까?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생긴 것. 그거 하나 바뀐 거 말고는 크게 바뀐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코피노 말고도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요. 이혼한 가정 전체에서는 80%가 양육비를 못 받고 있어요. 변한 게 별로 없는 거죠."
 

코피노에 대한 인식 변화는 있던가요?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흔히 섹스 관광하러 갔다가 낳은 아이.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유학 가서 정상적인 연애를 하다가 생긴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앞으로 뭐가 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필리핀에는 코피노 말고도 다른 나라 국적의 사람과 필리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많습니다. 특히 자피노(Japino, 주로 필리핀 여성과 일본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이름)는 그 수가 10만 명 정도에 이를 정도로 굉장히 많아요. 근데 자피노들은 본인이 자피노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습니다. 일본 정부에서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자피노가 있다면 변호사 비용을 대주기도 하고, 일본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기술 교육도 시켜주거든요. 부모 중 한 명이 일본 사람이면 국적 취득도 쉽고요."
 

그럼 코피노는 뭐가 다른가요?
"코피노들이 처한 상황은 다릅니다. 한국인 아버지를 두었다고 해서 국적 취득이 쉽지도 않고, 절차가 매우 까다로운데 이걸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다 해내기는 그야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변호사 비용도 알아서 해야 하죠. 그래서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고 지금까지 WLK, 양해들(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 배드파더스(Badfathers) 같은 경로로 도와주려고 했던 거죠."
 
WLK 자금은 어떻게 충당하십니까?
"양육비를 받게 되면 그중 50%는 코피노 맘에게 줬고, 20%는 로펌이, 나머지는 WLK가 가졌어요. 그런데 이걸로는 도저히 운영비 충당이 안 됐죠. 그래서 이슬람 반군 조직에 인질로 잡힌 외국인을 구출하고 사례금을 받는 일에 뛰어들었어요. 쉬운 일은 아니었죠. 칼싸움은 물론이고 총으로 서로를 쏘는 일도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과정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도 하죠. PTSD 증후군이 생겼어요.”
 

"매일 꿈에서도 총격전을 치릅니다."

 

PTSD, 어떻게 이겨내십니까?
"사람이 총을 머리에 맞으면요. 머리가 다 부서져 있어요. 머리 안에 있던 것들이 다 나와있습니다. 그런 걸 계속 보다 보면 불안감과 우울증이 반복됩니다. 극복한 적은 없어요. 치료제와 심리 상담을 통해서 증상을 완화시킬 뿐. 그 잔상은 평생 갈 것 같아요."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정의? 사명감? 저한테는 그런 거 없습니다. 저는 영웅이 아니에요.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 정말 많아요. 단지 가오 떨어지기 싫었고, 그만둘 수 없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 1월, 그는 대법원으로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를 공개하는 활동에 대한 공익성은 인정되지만, 신상정보를 공개했다는 점이 명예훼손을 했다고 판단했다. 판결 이후 WLK, 양해들 활동은 모두 중단되었다. 오로지 '가오'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해 왔다는 그는 필리핀에서도, 한국에서도, 심지어는 꿈에서도 싸움을 하고 있다. "코피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이 일을 계속 해왔다"라는 그. 오늘도 그는 '코피노 아이들의 미래'라는 무게를 버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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